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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강은교 [2020 시필사. 124일 차] 기적 - 강은교 그건 참 기적이야 산에게 기슭이 있다는 건 기슭에 오솔길이 있다는 건 전쟁통에도 나의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건 중병에도 나의 피는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햇빛은 나의 창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는 건 내가 사랑하니 당신의 입술이 봄날처럼 열린다는 건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일어났다, 기적처럼. #기적 #강은교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카카오프로젝트100 #낯선대학 #시처럼시필사 2021. 1. 10.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2020 시필사. 123일 차]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 2021. 1. 10.
흰 백합 - 루이스 글릭 [2020 시필사. 122일 차] 흰 백합 - 루이스 글릭 남자와 여자가 둘 사이에 별들의 침대 같은 정원을 만들며, 이곳에서 긴 여름 저녁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와 저녁이 차가워진다. 이 모든 것이 끝나 버릴 수 있고 다 부서질 수 있기에. 모든 것,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에. 향기로운 공기에 감싸여 부질없이 올라오는 좁다란 꽃대들도, 그 너머 바다처럼 소용돌이치는 양귀비꽃들도. 쉿, 사랑하는 이여, 얼마나 많은 여름을 내가 살아서 돌아왔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이 한 번의 여름만으로 우리는 영원에 들어섰으니까. 나는 당신의 두 손을 느낀다. 그 장엄함이 꽃피어 나도록 나를 묻는 손길을. #흰백합 #루이스글릭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 2021. 1. 10.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2020 시필사. 121일 차]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다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2021. 1. 10.
무화과 숲 - 황인찬 [2021 시필사. 10일 차] 무화과 숲 -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숲 #황인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1. 10.
말 - 장승리 [2021 시필사. 9일 차] 말 - 장승리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어 했던 말을 또 했어 채찍질 채찍질 꿈쩍 않는 말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니체는 울었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두 개의 혓바닥 하나는 울며 하나는 내리치며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안을까봐 안길까봐 했던 말을 또 했어 꿈쩍 않는 말발굽 소리 정확한 죽음은 불가능한 선물 같았어 혓바닥에서 혓바닥이 벗겨졌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두 개의 혓바닥을 비벼가며 누구에게 잘못을 빌어야 하나 #말 #장승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1. 10.
별 헤는 밤 - 윤동주 [2021 시필사. 8일 차]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2021. 1. 9.
도시의 눈―겨울 版畵 2 - 기형도 [2021 시필사. 7일 차] 도시의 눈―겨울 판화版畵 2 - 기형도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사방으로 인적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가며 썩은 꽃잎들끼리 모여 울고 있을까. 우리는 새벽 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 있다.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하구河口로 뛰어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 #도시의눈 #겨울판화2 #기형도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 2021. 1. 9.
쓸쓸한 날에는 바람만 불어라 - 이병률 [2020 시필사. 120일 차] 쓸쓸한 날에는 바람만 불어라 - 이병률 두 마리의 새를 묶어서 날린다 각각 한 마리 한 마리의 발목에 하나의 끈을 묶어서 날린다 그 두 마리 새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면 슬픔이겠다 각각의 새가 따로의 방향으로 날아가면 그래도 슬픔이겠다 이번엔 바람을 자른다 칼로 정확히 반으로 잘라내 둘이 서로 닿지 않게 한다 이제 바람이 부는 쪽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달리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바람은 어디로도 가지 않으며 이제는 도로 붙일 수도 없다 요 며칠 이토록 미어지게 쓸쓸한 것은 묶인 새 두 마리가 앉을 곳을 찾다 내 양쪽 어깨에 앉아 있거나 비집고서라도 바람이 가닿을 곳이 없기 때문이란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다 쓸쓸한 날에는 바람만 불어라 #쓸쓸한날에는바람만불어라 #.. 202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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