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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673

삶이란 아름다움인가 슬픔인가 - 이기철 [2020 시필사. 137일 차] 삶이란 아름다움인가 슬픔인가 - 이기철 길을 걸으면 무수한 어제들이 내 등 뒤에 쌓인다. 오늘 한 달치의 녹말과 한 주일치의 칼슘을 사 두고 겨울 곳간을 둘러보며 익어 가는 포도주를 돌아보면 즐거우리라 염소들은 추운 겨울 우리를 걱정하면서 남은 반 단의 풀잎을 다 먹어 둔다. 지금 들을 씻는 물소리는 아름답고 생애에 한 번 오는 늦은 각성으로도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따뜻하다. 내가 걷는 습관의 길 위에는 떨어지는 먼지인 듯 시간이 쌓이고 내 입은 면 내복은 몇 올의 실밥들이 드러난다. 오늘 12월호 잡지가 문간에 배달된다. 팔십사년 12월호를 내 생애에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나는 화약 냄새와 선전 포고의 몇 구절도 사랑해야 하리라 의류 공장에는 오늘 밤 내가 .. 2021. 1. 13.
풍경 달다 - 정호승 [2020 시필사. 136일 차] 풍경 달다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풍경달다 #정호승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카카오프로젝트100 #낯선대학 #시처럼시필사 2021. 1. 13.
울프 노트 : 시인의 말 - 정한아 [2020 시필사. 135일 차] 눈이 아하하하하하 쏟아지는 날 방바닥에 엎드려 '천재 유교수의 생활' 보기. #울프노트 #시인의말 #정한아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카카오프로젝트100 #낯선대학 #시처럼시필사 2021. 1. 13.
길 - 윤동주 [2020 시필사. 134일 차]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깊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 #윤동주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카카오프로젝트100 #낯선대학 #시처럼시필사 2021. 1. 13.
방어가 몰려오는 저녁 - 송종규 [2020 시필사. 133일 차] 방어가 몰려오는 저녁 - 송종규 별들이 앉았다 간 네 이마가 새벽 강처럼 빛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너를 증명해 보일 수가 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는 아마, 몇 개의 국경을 넘어서 몇 개의 뻘을 건너서 온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우주 밖 어느 별을 거쳐서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허공에 찍힌 빛들의 얼룩 때문에 누군가 조금 두근거리고 누군가 조금 슬퍼져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는 것 우리가 오래 전에 만난 나무들처럼 마주보며 서 있을 때 그때 마침 밤이 왔고, 그때 마침 술이 익었다는 것 나는 네 나라로 떠나간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가 알고 싶지만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술이 익은 항아리 속으로 .. 2021. 1. 13.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 장이지 [2020 시필사. 132일 차]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 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내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려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2021. 1. 13.
비 오는 날 - 마종기 [2020 시필사. 131일 차] 비 오는 날 - 마종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비오는날 #마종기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프로젝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카카오프로젝트100 #낯선대학 #시처럼시필사 2021. 1. 13.
이 사랑 - 자크 프레베르 [2021 시필사. 12일 차] 이 사랑 - 자크 프레베르 이 사랑 이렇게 격렬하고 이렇게 연약하고 이렇게 부드럽고 이렇게 절망하는 이 사랑 대낮처럼 아름답고 나쁜 날씨에는 날씨처럼 나쁜 이렇게 진실한 이 사랑 이렇게 아름다운 이 사랑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게 즐겁고 또한 어둠 속의 어린 아이처럼 두려움에 떨 때에는 이렇게 보잘 것 없고 한 밤중에도 평온한 어른처럼 이렇게 자신 있고 다른이들을 두렵게 하던 이 사랑 다른이들을 말하게 하고 다른이들을 질리게 하던 우리가 그들을 숨어 보았기에 염탐당한 이 사랑은 우리가 그를 쫓고 상처주고 짓밟고 죽이고 부정하고 잊어버렸기에 쫓기고 상처입고 짓밟히고 살해되고 거부당하고 잊혀진 완전한 이 사랑은 여전히 이렇게 생생하고 이렇게 빛나니 이것은 너의 사랑 이것은 나의 .. 2021. 1. 13.
발 없는 새 - 이제니 [2021 시필사. 11일 차] 발 없는 새 - 이제니 청춘은 다 고아지. 새벽이슬을 맞고 허공에 얼굴을 묻을 때 바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지.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이제 우리 무엇을 할까.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청춘은 다 고아지. 도착하지 않은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 나는 발 없는 새. 불꽃 같은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옷깃에서 떨어진 단추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난 사라진 단춧구멍 같은 너를 생각하지. 작은 구멍으로만 들락날락거리는 바람처럼 네게로 갔다가 내게로 돌아오지. 우리는 한없이 둥글고 한없이 부풀고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려고 해. 질감 없이 부피 없이 자꾸만 날아오르려고 하지. 구체성이 결여된 삶에도 사각의 모퉁이는 허용될까. 나는 기대어 쉴 만한 곳이 필요해. 각진 .. 202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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