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MyMars

시필사 & 시낭독/2021 시필사 : 1일 1시285

호수 - 이형기 [2021 시필사. 69일 차] 호수 -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수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호수 #이형기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0.
그래서 - 김소연 [2021 시필사. 68일 차] 그래서 - 김소연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 2021. 3. 10.
너에게 - 정호승 [2021 시필사. 67일 차] 너에게 -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너에게 #정호승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0.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 함민복 [2021 시필사. 66일 차]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 함민복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은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눈물을자르는눈꺼풀처럼 #함민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0.
휴일 - 자크 프레베르 [2021 시필사. 65일 차] 휴일 - 자크 프레베르 그래 잔은 비어 있었고 술병은 깨졌었지 침대는 활짝 젖혀져 있고 또 문은 닫힌 채였지 행복과 아름다움의 별같은 유리 조각은 너저분한 방의 먼지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지 난 환희의 불꽃이었어 나는 죽어가듯 취해 있었고 그리고 넌 온통 벗은 채 내 품 안에서 살아나듯 취해 있었지 Fiesta Et les verres étaient vides et la bouteille brisée Et le lit était grand ouvert et la porte fermée Et toutes les étoiles de verre du bonheur et de la beauté resplendissaient dans la poussière de la chambre .. 2021. 3. 6.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2021 시필사. 64일 차]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 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나의힘 #기형도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 2021. 3. 6.
오늘 - 마리오 베네데티 [2021 시필사. 63일 차] 오늘 - 마리오 베네데티 많은 어제와 많은 내일이 있다. 그러나 많은 오늘은 없다. #오늘 #마리오 베네데티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6.
아득한 한 뼘 - 권대웅 [2021 시필사. 62일 차] 아득한 한 뼘 - 권대웅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 꽃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향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 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 #아득한한뼘 #권대웅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5.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2021 시필사. 61일 차]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이문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이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자유롭지만고독하게 #이문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