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703 월하정인 - 이은림 [2021 시필사. 207일 차] 월하정인月下情人 - 이은림 그때 하필, 달이 사라지고 있었지 사라지는 줄도 몰랐는데 달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환한 사람이로구나, 했는데 어둠이 무엇인지 일러주려는 듯 그가 눈을 감았어 그보다 더 어두울 수는 없었지 그렇게 긴 찰나는 처음이었어 어쩌면, 바람이 불었어 달이 눈을 떴지 그가 먼저 눈을 떴던가 달이라 말하니 달이겠지 달이구나 말하니 달빛 흐르겠지 달빛에 대한 의심은 불순해 희미해지는 뒤태를 의심하는 것만큼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둥글고 환한 것 그날은 보름이었는데 내가 만진 것은 과연 누구였나 어디 한번 대답해봐, 손가락들아 둥글어지기 위해 사라지던 차가운 달 명심해, 온전한 것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 #월하정인 #이은림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 2021. 8. 1. 읽어줘요, 제발 - 김상미 [2021 시필사. 206일 차] 읽어줘요, 제발 - 김상미 마르크스가 죽은 해 카프카는 태어났지만 카프카가 죽은 해 나는 태어나지 못했어요 입 밖에 내지 못할 어둠 속에 그냥 누워서 입 속에서 죽어버린 내 사랑만 탓하고 있었어요 마음 던질 시간도 없이 마음 모을 시간도 없이 날마다 마음에다 벼랑만 쌓았어요 노란 튤립처럼 머리를 꼭 닫고 있었어요 서로 뒤얽힌 운명처럼 뒤얽힌 머리로 뭘 하겠어요? 생에 침을 뱉고 그 속에 꼭꼭 숨어서 금방 구워낸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두 눈 속에 빠뜨린 태양만 쪼아대고 있었어요 아무리 나를 아끼려고 해도 무수히 발길질 해대는 내 자궁 안의 불온한 버릇 ― 계속해서 읽어줘요, 제발 타버린 그대 마음 속 지독한 탄내 같은 시집詩集! #읽어줘요제발 #김상미 #시필사 #닙펜 #딥.. 2021. 8. 1. 점령 - 이훤 [2021 시필사. 205일 차] 점령 - 이훤 미소 하나로 너는 내 맘을 군림했다 매번 달가운 점령이었다 일생을 패하기로 한다 #점령 #이훤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8. 1. 31일, 2분 9초 - 김성대 [2021 시필사. 204일 차] 31일, 2분 9초 - 김성대 농구공이 공중에 머물렀을 때 나는 너의 시점을 잃기 시작한다 담쟁이 잎이 공중에 원을 그렸을 때 나는 너의 인칭을 잃기 시작한다 빗방울이 2분 9초의 그림자에 닿았을 때 나는 너의 시제를 살기 시작한다 너를 영원히 사랑한 적이 있다 #31일2분9초 #김성대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8. 1. 별똥별 - 이문재 [2021 시필사. 203일 차] 별똥별 - 이문재 그대를 놓친 저녁이 저녁 위로 포개지고 있었다. 그대를 빼앗긴 시간이 시간 위로 엎어지고 있었다. 그대를 잃어버린 노을이 노을 위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대를 놓친 내가 나를 놓고 있었다. 오른 손에 칼을 쥐고 부욱-- 자기 가슴팍을 긋듯이 서쪽 하늘 가늘고 긴 푸른 별똥별 하나. #별똥별 #이문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7. 31. 다정이 나를 - 김경미 [2021 시필사. 202일 차] 다정이 나를 - 김경미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이나를 #김경미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7. 31. 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 [2021 시필사. 201일 차] 다정함의 세계 - 김행숙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 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와 솟구쳐 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선다 #다정함의세계 #김행숙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7. 31. 몸살 - 김선우 [2021 시필사. 200일 차] 몸살 - 김선우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 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만으로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 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몸살.. 2021. 7. 31. 기억하는가 - 최승자 [2021 시필사. 199일 차] 기억하는가 - 최승자 기억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 날. 환희처럼 슬픔처럼 오래 큰 물이 내리던 그 날.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기억하는가 #최승자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7. 31. 이전 1 ··· 77 78 79 80 81 82 83 ··· 19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