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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Mars

시필사 & 시낭독673

하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21 시필사. 76일 차] 하늘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래, 하늘,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창턱도, 창틀도, 유리도 없는 드넓은 창. 오로지 구멍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러나 광범위하게 활짝 열린 하늘. 하늘을 쳐다보기 위해 일부러 목을 길게 빼거나 화창한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등 뒤에, 손안에, 눈꺼풀 위에 하늘을 가지고 있다. 하늘은 나를 단단히 감아서 아래로부터 번쩍 들어올린다. 가장 높다란 산봉우리라고 해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곳에 있어도 다른 곳보다 하늘을 더 많이 가지진 못한다. 떠도는 구름은 하늘에 의해 무참히 짓이겨져 공동묘지의 무덤들처럼 공평하게 조각나고, 두더지는 날개를 퍼덕이는 부엉이처럼 가장 높은 천상에서 부지런히 굴.. 2021. 3. 21.
끝까지 가라 - 찰스 부코스키 [2021 시필사. 75일 차] 끝까지 가라 - 찰스 부코스키 무엇인가를 시도할 계획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렇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마라. 만약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이것은 여자친구와 아내와 친척과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너의 마음까지도. 끝까지 가라. 이것은 3일이나 4일 동안 먹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추위에 떨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당하고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립은 선물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네가 얼마나 진정으로 그것을 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 시험일 뿐. 너는 그것을 할 것이다, 거절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리고 그것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을 것이다. 만약 시도할 것이.. 2021. 3. 16.
푸른 멍이 흰 잠이 되기까지 - 박연준 [2021 시필사. 74일 차] 푸른 멍이 흰 잠이 되기까지 - 박연준 날이 무디어진 칼 등이 굽은 파초라고 생각한다 지나갔다 무언가 거대한, 파도가 지나갔나? 솜털 하나하나 흰 숲이 되었다 문장을 끝내면 마침표를 찍고 싶은 욕구처럼 생각의 끝엔 항상 당신이 찍힌다 나는 그냥 태연하고, 태연한 척도 한다 살과 살이 분리되어 딴 길 가는 시간 우리는 플라나리아처럼 이별한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매 순간 흰 숲이 피어난다 #푸른멍이흰잠이되기까지 #박연준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5.
내 사랑 그대를 위해 - 자크 프레베르 [2021 시필사. 73일 차] 내 사랑 그대를 위해 - 자크 프레베르 새시장에 갔었지 나는 새들을 샀지 내 사랑 그대를 위해 꽃시장에 갔었지 그리고 꽃을 샀지 내 사랑 그대를 위해 철물시장에 갔었지 그리고 쇠사슬을 샀지 무거운 쇠사슬을 내 사랑 그대를 위해 그 다음 노예시장에 갔었지 그리고 널 찾아다녔지 하지만 난 너를 찾지 못했네 내 사랑이여. #내사랑그대를위해 #너를위해내사랑아 #자크프레베르 #쟈끄프레베르 #JacquesPrevert #닙펜 #딥펜 #시필사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5.
초혼 - 김행숙 [2021 시필사. 72일 차] 초혼 - 김행숙 위와 아래를 모르고 메아리처럼 비밀을 모르고 새처럼 현기증을 모르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강물에 던졌다 나는 너를 공중에 뿌렸다 앞에는 비, 곧 눈으로 바뀔 거야 뒤에는 눈, 곧 비로 바뀔 거야 앞과 뒤를 모르고 햇빛과 달빛을 모르고 내게로 오는 길을 모르는,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해 #초혼 #김행숙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5.
꾀병 - 박준 [2021 시필사. 71일 차] 꾀병 - 박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럽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꾀병 #박준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2021. 3. 15.
여름날은 간다 - 한강 [2021 시필사. 70일 차] 여름날은 간다 - 한강 검은 옷의 친구를 일별하고 발인 전에 돌아오는 아침 차장 밖으로 늦여름의 나무들 햇빛 속에 서 있었다 나무들은 내가 지나간 것을 모를 것이다 지금 내가 그중 단 한 그루의 생김새도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그 잎사귀 한 장 몸 뒤집는 것 보지 못한 것처럼 그랬지 우린 너무 짧게 만났지 우우우 몸을 떨어 올었다 해도 틈이 없었지 새어들 숨구멍 없었지 소리 죽여 두 손 내밀었다 해도 그 손 향해 문득 놀라 돌아 봤다 해도 #여름날은간다 #한강 #만년필 #라미 #펜글씨 #손글씨 #시필사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2.
호수 - 이형기 [2021 시필사. 69일 차] 호수 -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했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수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호수 #이형기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3. 10.
그래서 - 김소연 [2021 시필사. 68일 차] 그래서 - 김소연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 202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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