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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2021 시필사 : 1일 1시285

사슬 - 이성복 [2021 시필사. 267일 차] 사슬 - 이성복 내가 당신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당신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웃는 것 같았고 우는 것 같았고 온갖 슬픔과 기쁨이 하나로 섞인 그 소리는 나의 머리끝 발끝을 끝없이 돌아나갔습니다 그 소리에 잠겨 나도 당신도 잊혀지고 헤아릴 수 없는 윤회의 고리들이 반짝였습니다 반짝임 사이로 어둠이 오고 나도 당신도 남이었습니다 #사슬 #이성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9. 24.
슬픔 - 이성복 [2021 시필사. 266일 차] 슬픔 - 이성복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내가 그대에게 바랄까요 그대가 내지 않은 길을 그대가 나에게 바랄까요 그래도 내 가는 길이 그대를 향한 길이 아니라면 그대는 내 속에서 나와 함께 걷고 계신가요 나를 미워하고 그대를 사랑하거나 그대를 미워하고 나를 사랑하거나 갈래갈래 끊어진 길들은 그대의 슬픔입니다 나로 하여 그대는 시들어 갑니다 #슬픔 #이성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9. 24.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3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1 시필사. 265일 차] #오르페우스에게바치는소네트 #라이너마리아릴케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9. 24.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2021 시필사. 264일 차]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 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할만한지나침 #기형도 #시필사 #볼펜.. 2021. 9. 21.
추억에 대한 경멸 - 기형도 [2021 시필사. 263일 차] 추억에 대한 경멸 - 기형도 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 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 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 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 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쓸까 어쩌다가 이봐,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 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 2021. 9. 20.
여행자 - 기형도 [2021 시필사. 262일 차] 여행자 - 기형도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 던진다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오래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 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낯짝을 보인 적도 없다 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 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 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 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 2021. 9. 19.
진눈깨비 - 기형도 [2021 시필사. 261일 차] 진눈깨비 - 기형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갓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 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2021. 9. 18.
강가에서 3 - 이성복 [2021 시필사. 260일 차] 강가에서 3 - 이성복 저렇게 밀려가면서도 당신은 제자리에 계십니다 저렇게 파랑치고 파랑치면서도 당신은 머물러 계십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밀려가고 밀려오면서도 나와 함께 계시는 당신 당신에게 이끌려 기어코 나는 흐르고야 맙니다 오, 한없이 떨리는 당신 #강가에서3 #이성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9. 17.
강가에서 2 - 이성복 [2021 시필사. 259일 차] 강가에서 2 - 이성복 깊은 물 속으로, 더 깊은 물 속으로 내려서면서 우리는 발끝으로 당신의 가슴 언저리를 더듬었습니다 이명처럼 오랜 날들이 지나고 우리가 닿은 곳은 당신의 하구였습니다 밤새 비 내리고 폭풍우가 멎은 아침,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맑게 닦인 모래알처럼 고운 당신의 웃음이 우리를 받았습니다 #강가에서2 #이성복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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