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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2021 시필사 : 1일 1시285

안개 - 기형도 [2021 시필사. 33일 차] 안개 - 기형도 1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2021. 2. 3.
첫 눈에 반한 사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21 시필사. 32일 차] 첫 눈에 반한 사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2021. 2. 1.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2021 시필사. 31일 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는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획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 2021. 2. 1.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2021 시필사. 30일 차]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늦은저녁나는 #한강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2. 1.
사람과의 거리 [2021 시필사. 29일 차] #사람과의거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1. 29.
중세기 회교도의 충고 - 오마르 카이얌 [2021 시필사. 28일 차] 중세기 회교도의 충고 - 오마르 카이얌 슬픔이 너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쓸데없는 근심이 너의 날들을 뒤흔들게 내버려두지 말라. 책과 사랑하는 이의 입술을 풀밭의 향기를 저버리지 말라. 대지가 너를 그의 품에 안기 전에 어리석은 슬픔으로 너 자신을 너무 낭비하지 말라. 그 대신 축제를 열라. 불공정한 길 안에 정의의 예를 제공하라. 왜냐하면 이 세계의 끝은 무이니까.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라. 그리고 자유롭다고. #중세기회교도의충고 #오마르카이얌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1. 28.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2021 시필사. 27일 차]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믈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영혼을위하여 #고정희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 2021. 1. 27.
단풍나무 한 그루 - 안도현 [2021 시필사. 26일 차] 단풍나무 한 그루 - 안도현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죽여야겠다고 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한그루 #안도현 #시필사 #닙펜 #딥펜 #펜글씨 #손글씨 #매일시쓰기 #1일1시 #하루에시한편 #이른아침을먹던여름 #thatsummerwithyou 2021. 1. 27.
초대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2021 시필사. 25일 차] 초대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추러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당신이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가 나.. 202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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