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필사. 146일 차]
간밤, 안개 구간을 지날 때 - 정한아
너무 좋아서 차마 들을 수 없는 노래. 다 들어버리고 나면 삶이 지나치게 비루해져버릴 거라. 모든 좋은 노래는 이곳에서 났으나 이곳 아닌 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고, 이곳 아닌 곳이 노래 속에만 있을 것이라 믿으므로 우리는, 이 곡을 듣고 나면 미쳐버리는 거라.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에서 눈을 뜨는 거라. 그러나 그 곡이 끝나고 나면, 비루한 삶이 그리워 우는 거라. 이곳이 아닌 곳이 너무 추워 우는 거라. 눈 감은 채 고양된 황홀은 추락의 느낌과 너무나 흡사하고, 높이는 깊이와 같아지고, 지옥은 지극히 권태로운 곳이 될 거라. 천국과 뫼비우스의 띠로 이어져 있을 거라. 너무 좋아서 차마 다 들을 수 없는 곡을 들을 때, 듣다가 꺼버릴 때, 우리는 우리가 지옥에서 돌아왔는지, 천국에서 쫒겨났는지 분간할 수 없고, 혹은 유일하게 진짜인 우리의 삶으로부터 지옥이며 천국인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는 거라.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는 곡은 하나의 지극한 生. 누구의 것도 아닌, 하지만 귀 기울일 때에는 온전히 자기 자긴인 지독한 生. 우리는 전생으로 나아간다. 혹은 사후로 돌아간다. 혹은 전생이며 사후인 어떤 이방에서 귀환한다. 뜨거운 돌을 쥐고. 모든 일은 지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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