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긴 글을 쓰고 싶어.
생각이 깊었고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입 밖으로 나왔을 때의 말의 힘도 있지만, 눈으로 보일 때의 글의 힘도 있는 것 같아.
1. 울고 싶어지는 시끄러운 고독
겨울나무를 바라보고, 겨울나무를 사색하고 나무속에 담긴 생명력을 느끼고 작업한, 고요하고 깊은 작품을 보며 고요함이 품고 있는 시끄러운 고독이 느껴져서 울고 싶어졌다.
시끄러운 고독이 뭘까? 나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울고 싶으니까.
어제 좋은 전시 봐서 힘이 난다고 했다. 나도 힘이 좀 필요해.
마침 나는 오늘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래, 장소도 가깝네. 보러 가기로 결정.
혼자 전시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없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으른의 가사를 쓰고 싶다고 했지.
나는 고독이 뭔지 아는 사람일까?
2. 공중다리의 사색 - 겨울나무로부터
고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가 운전을 하며 가는 길에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아무런 선입관을 갖지 말고 그저 보자.
어떤 것을 바라볼 때 다만 바라보라. 어떤 것을 들을 때 다만 들으라. 어떤 것을 감각할 때는 다만 감각하고, 인식할 때는 다만 인식하라. 그것들에 '나의 마음'을 개입시키지 않을 때 그대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고, 자유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볼 때는 거기 오직 봄만이 있어야 한다. 들을 때는 거기 오직 들음만이 있어야 한다. 감각할 때는 오직 감각만이 있어야 하고, 인식할 때는 오직 인식함만이 있어야 한다.
전시관은 작았고 아무도 없었다.
1분 정도 주위를 둘러보며 고민하다 쭈뼛쭈뼛 들어가서 눈에 띄는 순서대로 그냥 훑어보았다.
안쪽에서 작가가 손으로 쓴 듯한 작품 번호와 제목을 적은 종이를 발견했다. 번호 순서대로 다시 보았다.
작품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살린 전시>
제목은 언제나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 사이 작가가 들어와서 인사를 나누었다.
검은 봉투에 담긴 작품 해설 글을 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뭇가지에 닿아있는 햇살을 그리고 싶었다. 이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잔가지에 따뜻한 햇살이 닿아있는 것을 보면 나는 내가 늘 꿈꾸던 어떤 세계 속으로, 내 안의 그늘 속으로 기쁨의 구름들이 들어와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도 그래! 나도 그 햇살을 소리 내고 싶어!
다시 한번 작품들을 보았다.
햇살이 보였다.
작가가 다시 들어와 또 인사를 나누었다.
오래 봐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나는 제작 시기에 맞추어 <목련 연작 스토리북>부터 다시 또 작품들을 보았다.
'위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뒷 일정이 없으니 시간도 많고 전시장에 사람도 없고 작품도 적으니까, 나의 눈이 보는 데로, 나의 마음이 보는 데로, 작가의 마음을 상상하며 등등 아주 여러 가지로 천천히 작품들을 보고 또 보았다.
이런 적도 처음인데?
3. 나는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할까?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작편곡가, 프로듀서, 인디레이블 대표, 음악 선생님, 기타 교본 저자... 세상에서 불리는 직업 이름으로 늘어놓으면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난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기타로든 목소리로든 다른 악기로든 컴퓨터로든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즐겁다.
수도 없이 반복하며 지독하게 집요한 과정을 거쳐, 방망이 깍듯이 다듬고 또 다듬어 상상하는 것에 가까운 그 소리를 만들어낸다.
완성도를 위해 기꺼이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칠 수 있다.
하지만 완성이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그만할 뿐이다.
전시회에 가서 작품들을 볼 때면 언젠가부터 -아마도 음악이란 것을 직업으로 택하고 나서겠지- 내 눈앞에 있는 저것을 소리로 나타낸다면 무엇일까? 생각하고는 한다.
확연히 들릴 때도 있고 아무 생각 안 날 때도 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클라이언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냥 마음에 쿵~ 소리가 울려 퍼질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작품 앞에서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나무가 자라는 소리, 햇살이 내리쬐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는 20~20000hz에 불과하다.
실은 그 소리들이 있을 수도 있어. 단지 내가 듣지 못하는 것일 뿐.
느낌이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해주는 능력인 것 같다.
느낌, 육감, 예감... 이런 것.
나는 <공중다리의 사색> 앞에서 한참을 서서 나무와 햇살의 소리를 느꼈다.
"저는 소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참 고요하네요."
(사실 좀 당황해서 -아무도 없는 전시회에서 첨 보는 작가와 독대라니-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전시에 오신 분들이 왠지 조용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내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어.
"작가님의 작품에서 인간이라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느껴졌어요!"
4. 작가의 첫 개인전
이 모든 게 내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님을 기억하려 합니다.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해서, 제가 한 것은 문을 열고 있었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고 있으면 새도 들어오고, 햇살도 들어오고, 비도 들이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정리하게 됩니다.
손유진 작가는 맑고 차분한 눈동자를 가졌더라.
난 원래 눈동자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에 99% 동감하기 때문이야.
누군가의 눈동자를 보고 그 사람이 궁금해지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만약 첫인사에서 작가의 눈동자에 근심이나 슬픔, 고통, 무거움이 느껴졌다면 작품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을 것 같아.
첫 개인전인데 신남, 들뜸, 불안, 설렘, 욕심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그냥 편안해 보였어.
나를 바라볼 때 약간의 고마움과 호기심이 느껴졌고.
내가 아까 했던 말의 뜻은 이거였어.
나는 작가를 잘 몰라. 그저 순간 보이는 것을 봤을 뿐.
그래서, 나는 고독보단 위로가 느껴졌어.
나는 작가를 잘 모르니까 적은 정보 속에서 내가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이 더 지배적인 감상일테고, 모든 과정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깊이 있게 작품을 감상했을거야. 만약 내가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작품들을 봤으면 전혀 다른 감상을 했을 것 같아.

누군가의 첫 개인전에 함께 하게 되다니, 나중에 죽을 때까지 써먹을 수 있겠다.
내 친구들이 급할 때, "야 내가 너 서클 첫 공연에도 가줬잖아!" 하면 기냥 깨갱하고 눼눼하게 되는... ㅋㅋ
사인해 달라니까 사인 없다고 이름 써준 것도 되게 인상적이야.
다음 전시는 <목련 연작 스토리북>에 있는 거라고 해서 기대가 많이 되네. 시간 맞으면 가고 싶다.
오늘 무척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래오래 생각날 것 같아.
아! 돌아오며 예술가에 대해 생각한 것도 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너무 오래 썼어 ㅎㅎ
그나저나 이제 일요일이 되었는데 하아...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서 오래된 글을 발견했다.
오래되었구나 참 오래되었어...
오늘을 기념하며 발행.
#공중다리의사색 #겨울나무로부터 #손유진개인전 #청년예술청 #나의화성 #MyMars
'예술가의 길 > 오늘의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직업 예술인으로 살아가기 (feat. 예술활동증명 갱신) (0) | 2026.08.25 |
|---|---|
| 비 오는 강변북로 (0) | 2026.08.22 |
| 조용하고 더웠던 유월의 어느 월요일 (0) | 2026.06.26 |
| 예술가의 용기 (0) | 2026.06.03 |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0) |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