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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너에게 들려주는 시

상담가의 신비한 수정 구슬 - 고민형

by 박지은(MyMars) 2024. 9. 20.

[너에게 들려주는 시. 134]

https://youtu.be/C5JsfDyFtSg?si=Am8jMZ_gOFnoNFVY

 

너와 마주 앉아 처음 술을 마실 때 

나는 너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가을밤을 걸으며 너도 나에게 비밀 이야기를 해주었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비밀 이야기는 위험하다.

나는 실제로 상담가와 사랑에 빠진 적도 있다.

사실 비밀 이야기를 나누면 대체로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나는 비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너를 만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을 뿐.

 

너를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하고 

너무 좋아하고 

그렇게 계속 좋아하다가,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내 심장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내 영혼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 같아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널 정말 좋아했다.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을 만큼 끝까지 좋아했다. 

그렇게 너를 쫓아 

아는 이 하나 없는 먼 외딴섬에 홀로 버려졌지.

더는 견디지 못하겠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하지 못했고

못다한 이야기도 끝내 하지 못했다.

내 전부가 돌로 변하기 전에 

이만 눈을 감을게. 

 

 

상담가의 신비한 수정 구슬 - 고민형

 

  예전에 친구에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친구가 '상담 기술'이라는 것을 배웠으면 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정말 상담 기술을 배워서 나에게 써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상담 기술을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내가 생각하는 고통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휴지 조각, 쇠구슬, 호박이라고 소리를 내서 말해보고 내가 느끼는 고통을 그것 중 하나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거나 던져버리거나 망치로 때려 부수고. 정말 효과가 있냐고? 효과가 있다는 사람은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토끼, 비둘기, 이구아나를 꺼내는 것처럼 자신의 문제를 이것저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정신의학 서적에 따르면 내담자는 상담가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 상담가로서도 상담을 계속 진행해 나가야 하므로 내담자의 호감이 나쁘지 않다. 호감에 그치면 안 되겠지만, 일단은 내담자가 반감을 품게 하지는 않는다. 책에 따르면 내담자가 상담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일도 흔하다. A라는 약을 투여하면 높은 확률로 뇌압이 상승하고 그러다가 결국 뇌졸중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A라는 상담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는 상담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결국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는 정신과 진료가 끝나고 2년이 지나면 의사와 환자가 사귀고 결혼할 수 있다. 

  친구는 적어도 내가 반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엉뚱하게도 친구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 상담가도 누군가의 내담자다. 친구가 내게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상상을 해본 적 있다. 나는 상담가로서 친구를 맞이한다. 친구가 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나는 '분석가의 욕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분석가의 욕망을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걸 다른 물건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점성술사의 신비한 구슬처럼 분석가의 욕망은 잃어버릴 수도 있고 다시 찾을 수도 있다. 어떤 최악은 끊임없이 나에게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을 가진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를 떠났던 사람이 찾아온다면 나는 당황한 나머지 신비한 수정을 깨트릴 수도 있는 거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슈퍼바이저는 내게 상담을 포기할 것을 권할 수 있다. 내 앞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지난 연애사를 읊기 시작한다. 한번은 남자친구 중 하나가 그녀의 집 앞에 찾아왔고 그가 울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만족감을 느꼈다는. 뭐랄까. 나에게는 너무도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그

런 이야기들 말이다.

 

  상담가는 상담의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방패를 들고 내담자의 눈이 내담자를 향하도록 한다. 신화와 같이 내담자를 파멸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방패를 든 상담가는 왜 이토록 힘들게 방패를 들고 죽음을 무릅쓰고 내담자를 도와주어야 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거고, 또 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거고, 왜 나는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왜 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왜 나는 이 이야기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왜 나는 이 대화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상담가가 방패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본다. 거기 메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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