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시필사. 115일 차]
낙화 - 권지숙
꽃이 진다
지는 꽃은
눈 감고 치마 뒤집어쓰고 망설임 없이
떨어지는 꽃은
꽃이 아니다
뺨 부비며 웃던 꽃잎들
그만 뿔뿔이 흩어져
더러운 아스팔트 위에 엎드린 꽃
바람에 쓸려 구석구석 뒹굴어
찢기고 피 흘리는 꽃은 꽃이 아니다
별 밝은 밤 저도 별인 듯 담벼락에 붙어
하얗게 웃고 있는 꽃은
더이상 꽃이 아니다
슬픔이다
지는 꽃은
꽃샘추위에 떨며 구걸하는 이의 머리 위에
떨어진 꽃은
꽃이 아니다
비틀린 팔다리 휘저으며 바삐 걸어가는 아이의
가슴팍으로 숨어드는 꽃잎은
탱자가시 울타리에 떨어져
탱자꽃인 척 숨죽인 꽃은
꽃이 아니다
낡은 길섶 냉이풀 옆에 누워
떨어진 배꼽자리에 어느새 맺힌 열매
짙어지는 어린 연두잎들을 지긋이 올려다보는
더 이상 꽃이 아닌 꽃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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