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시필사. 219일 차]
거울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래, 나는 그 벽을 기억한다,
우리의 몰락한 도시에 세워져 있던 그것은
거의 6층 높이까지 솟아 있었고,
4층에는 거울이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거울이었다,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고,
너무도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었기에.
더 이상 그 누구의 얼굴도 비추지 않았고,
머리를 매만지는 그 어떤 손도,
맞은편에 있는 그 어떤 문도,
'장소'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공간도
투영하지 않았지만.
마치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온 듯했다―
살아 있는 하늘이 거울을 응시했다,
야생의 공기 속을 유영하는 부산한 구름과,
반짝이는 빗줄기에 젖은 폐허의 먼지와,
비상하는 새들과, 별들과, 해돋이도.
잘 만들어진 모든 물건이 그러하듯
거울은 완벽하게 제 임무를 수행했다.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놀라움의 감정을 배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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