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필사 & 시낭독/2018 매일 시필사 (30일 프로젝트)
기형도. 종이달
by 박지은(MyMars)
2018. 11. 22.
시필사 12일 차.
4페이지 필사!!
굿바이~ 내일부턴 내가 좋아하는 시를 써야지=
종이달 - 기형도
1
과거는 끝났다.
송곳으로 서류를 뚫으며 그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 김(金)을 본다.
자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수백 개 명함들을 읽으며
일일이 얼굴들을 기억할 순 없지.
또한 우리는 미혼이니까, 오늘도
분명한 일은 없었으니까
아직은 쓸모 있겠지. 몇 장 얄팍한 믿음으로
남아 있는 하루치의 욕망을 철(綴)하면서.
2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한두 시간 차이 났을 뿐. 내가 아는 것을
그들이 믿지 않을 뿐.
나에게도 중대한 사건은 아니었어.
큐대에 흰 가루를 바르면서
김은 정확하게 시간의 각을 재어본다.
각자의 소유만큼씩 가늠해보는 가치의 면적.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
잠시 잇고 있었을 뿐. 좀 복잡한 타산이니까.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 번도 없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와이셔츠 단추 한 개를 풀면서
날 선 칼라가 힘없이 늘어질 때까지
어쨌든 우리는 살아온 것이니.
오늘의 뉴스는 이미 상식으로 챙겨 듣고.
3
믿어주게.
나도 몇 개의 동작을 배웠지.
변화 중에서도 튕겨져나가지 않으려고
고무풀처럼 욕망을 단순화하고
그렇게 하나의 과정이 되어갔었네. 그는
층계 밑에 서서 가스라이터 불빛 끝에 손목을 매달고
무엇인가 찾는 김을 본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잃어버린 것은 찾지 않네. 그럴 만큼 시간은 여유가 없어.
잃어버려야 할 것들을 점검 중이지.
그럴 만큼의 시간만 있으니까.
아무리 조그만 나프탈렌처럼 조직의 서랍 속에 숨어 있어도
언제나 나는 자네를 믿어왔네. 믿어주게.
로터리를 회전하면서 그것도 길의 중간에서
날씨야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4
사람들은 조금씩 빨라진다.
속도가 두려움을 만날 때까지. 그러나
의사의 기술처럼 간단히 필라멘트는
가열되고 기계적으로 느슨히
되살아나는 습관에 취할 때까지 적어도
복잡한 반성 따위는 알코올 탓이거니 아마
시간이 승부의 문제였던 때는 지났겠지.
신중한 수술이 아니어도 흰색 가운을 입듯이
누구나 평범한 초침(秒針)으로 손을 닦는 나이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여주게.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주 사무적인 착상이군. 여기와 지금이 별개이듯이
내가 집착한 것은 단순한 것이었어. 그래서
더욱 붙어 있어야 함을 알아두게. 일이 끝나면
굳게 뚜껑을 닫는 만년필처럼.
5
소리 나는 것만이 아름다울 테지.
소리만이 새로운 것이니까 쉽게 죽으니까.
소리만이 변화를 신고 다니니까.
그러나 무엇을 예약할 것인가.
방이 모두 차 있거나 모두 비어 있는데.
무관심만이 우리를 쉬게 한다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는 없어진다.
과거는 끝났다.
즐거움도 버릇 같은 것.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거울 속의 키를
확인하고 안심하듯이 우리는 미혼이니까.
속성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휘파람 불며
각자의 가치는 포켓 속에서 짤랑거리며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 번도 없어. 제발 그만두게. 자네를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토해냈네. 또한
무엇이든 분명한 일이 없었고
아직도 오늘은 조금 남아있으니까. 그럼.
굿바이.
D-4
얇은 공책이지만 12일 만에 다 썼다.
물론 잉크가 비쳐서 못쓰는 페이지들이 많았지만 흐흐
내일부턴 새로운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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