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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Mars
시필사 & 시낭독/2020 매일 시필사

세상의 나머지 - 이병률

by 박지은(MyMars) 2021. 1. 9.

[2020 시필사. 114일 차]

세상의 나머지 - 이병률     

 

왔구나     

눈에 담기는 것은

뇌의 물살을 받고 마음의 파장을 받고

죄의 높낮이에 따라서도 좌우되겠지만

마음으로 오지 않고 눈(雪)으로 왔다, 너는

 

우박 퍼붓기 직전

격렬한 대기의 파동처럼

만났구나

그렇게 너와 한 세기는 와서

몸살이 되고 물기둥이었다가

한곳으로 쓸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끝이 되고 마는구나

 

한 세기의 폐 사진을 보았다

폐를 중심으로 많은 관(管)들이 뻗어 있는

너의 중심은 마른 나무의 가슴 같았다

 

관이 문제였다

관을 따라서

관 속의 녹슨 것들하고만 내통하여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이 생에서는 수고하며 먼지나 주워 먹고 가리라

거만히 본전이나 보태다가 안 보일 때까지 사라지리라

 

모든 죽음은 이 생의 외로움과 결부돼 있고

그 죽음의 사실조차도 외로뭉이 지키는 것

그러니 아무리 빚이 많더라도 나는

세상의 나머지를 거슬러 받아야겠다

 

그러니 한 얼굴이여, 그리고 한 세기의 얼굴이여

부디 서로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조금만 끌어안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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