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필사. 114일 차]
세상의 나머지 - 이병률
왔구나
눈에 담기는 것은
뇌의 물살을 받고 마음의 파장을 받고
죄의 높낮이에 따라서도 좌우되겠지만
마음으로 오지 않고 눈(雪)으로 왔다, 너는
우박 퍼붓기 직전
격렬한 대기의 파동처럼
만났구나
그렇게 너와 한 세기는 와서
몸살이 되고 물기둥이었다가
한곳으로 쓸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끝이 되고 마는구나
한 세기의 폐 사진을 보았다
폐를 중심으로 많은 관(管)들이 뻗어 있는
너의 중심은 마른 나무의 가슴 같았다
관이 문제였다
관을 따라서
관 속의 녹슨 것들하고만 내통하여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이 생에서는 수고하며 먼지나 주워 먹고 가리라
거만히 본전이나 보태다가 안 보일 때까지 사라지리라
모든 죽음은 이 생의 외로움과 결부돼 있고
그 죽음의 사실조차도 외로뭉이 지키는 것
그러니 아무리 빚이 많더라도 나는
세상의 나머지를 거슬러 받아야겠다
그러니 한 얼굴이여, 그리고 한 세기의 얼굴이여
부디 서로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조금만 끌어안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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