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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필사 & 시낭독/2021 시필사 : 1일 1시

1914년 - 김행숙

by 박지은(MyMars) 2021. 5. 27.

[2021 시필사. 146일 차]

1914년 - 김행숙

 

  당신은 마음을 흙이라고 생각하는가 봐요. 파고, 파고, 파다 보면 100년 전 호텔도 그곳에 들일 수 있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다녀갔다는 듯이, 죽은 사람들도 복도를 돌아다닌다는 듯이, 한밤중의 창문에 나타나는 눈동자들은 텅 비어 있곤 했는데...... 그런 창문이라면,

  그런 눈동자라면, 그곳에 하염없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당신은 왜 글을, 글을,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마음이 흙이라면, 눈에 들어가는 흙, 손톱 발톱에 까맣게 차오르는 흙, 뿌리가 생기고 바람 부는 들판이 생기고 어딘가에 한 마리 짐승을 숨기고 내놓지 않는 흙,

  한 마리 짐승이 먹잇감이라면, 사냥을 준비하며 더욱 예민해지는 짐승들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흙, 세상의 모든 코의 점막들이 끈적거리듯이,

  살아 있는 동안은 끈적거려야 하는 모든 것에 덮여 있고, 빠져 있고, 그래서 시시때때로 손을 씻고 아침저녁으로 몸을 닦고, 긁고, 깎는데,

  흙 속에 뭔가, 뭔가,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 이 마음속에 뭔가, 뭔가, 뭔가가 있어서 흙을 만지듯이 당신을 만지면, 나는 자꾸 흘러내리네. 흙은 자꾸 흘러내리네.

  그런 것이 속옷 같으면, 나는 밖에 나갈 수 없네. 그런 속옷이 시간 같으면, 내가 가진 시간의 누런 팬티는 몇 번을 빨아 다시 입을까?

  몸 밖으로 나가면 마음은 없다는 듯이, 난 종일 호텔 방에서 끙끙 앓았어요. 멀리 여행을 떠나왔는데 그럴 거라면, 당신과 함께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우며 부풀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비슷했지만 옆에 누웠다가 떠난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어요. 그를 생각하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자꾸자꾸 흘러내려 없어졌어요. 부드러운 젖가슴처럼 한 줌의 흙만 남았을 뿐,

  한 줌의 흙을 뿌리처럼 움켜쥐고 이게 뭘까, 이게 뭘까, 이게 뭘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없어지듯이 또 졸리기 시작했어요.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면,

  당신이 거인이 될 때까지, 당신이 나의 전부를 점령할 때까지, 당신이 내 먼 미래에 닿을 때까지, 꿈을, 꿈을, 꿈을 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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