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필사. 93일 차]
이병률 - 몸살
한번 녹으면 영원히 얼지 못하는 얼음처럼
한번 아픈 것이 영원히 낫지 않는다
낫지 않으니 축적이다
독을 내몰고 새 독을 품으려니 갱신이다
이 몸이 불길을 지킬 것이니
몸아, 몸을 귀찮게 마라
피와 식사에 애틋하게 관여하고
영혼의 물을 흘리며
우리는 조금 더 늙겠지만
어쩌면 이토록 한 사람 생각으로
이 밤이 이다지 팽팽할 수 있느냐
저리도 곡선으로 떼를 지어 할 말이 많은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곳으로 이끌리더라도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냐
어제는 단어가
오늘은 전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암시가 있으려나
사랑이 끝나는 자리에 한 번쯤 미리 다녀오라고
새가 자꾸 울어대더라도
살(煞)은 절[寺]이어서 명치가 깊다
몸살아, 다 그만두고
어떤 연애처럼
비밀 하나 입에 넣고 열지를 말았으면
마음에 눈금을 표시해 거리를 기록해두었으면 한다
몸살아, 술잔 놓고 농담하러 가자
그러다 그러다 안 되면 허물어버린 것들이 쌓이고
묻어버린 것들은 돋아나기 시작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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