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MyMars
예술가의 길

공동체, 노년, 창의성, 그리고 예술

by 박지은(MyMars) 2018. 8. 26.

얼마 전 모종의 서류를 검토하다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100세 이상 노인의 숫자가 1만 7천 명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100살 넘는 사람은 기네스북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고령화가 어떤 수치보다 부쩍 눈앞에 육박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제 40대 초반인 나는 사고를 당하거나 몸을 혹사시켜 몹쓸 병을 얻지 않는 이상 100세 언저리까지는 무난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때, 내 삶에는 어떤 보람과 즐거움이 남아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게 직간접적으로 확인되는 요즘이지만, 생이 길어진다는 것이 마냥 축복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건강과 빈곤이 가장 근본요인으로 잠복해 있다.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처럼 언젠가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기도 한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순간(이게 저 유명한 특이점, singularity다. 커즈와일은 2045년을 특이점에 도달하는 시기로 특정한다) 이후에는 문자 그대로의 ‘영생’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그는 그 시점까지 살아있기 위해 하루 100알의 영양제를 먹고 있다.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캐너, 광학문자 인식기(OCR), 신디사이저 등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이자 미래학자로, 창의라는 말에 가장 바짝 다가선 인간 중 한 명이다.

창의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상황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이야기한다면, 예술 역시 창의의 단짝 개념이 될 것이다. 옥인 콜렉티브(Okin Collective: 2009년 서울 종로구 옥인아파트 철거를 계기로 결성된 작가 그룹)의 2017년 작 ‘황금의 집(Casa d’Or)’은 제주 원도심의 까사돌이라는 한 커피숍과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운영자인 이용희 원장은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었던 제주도립병원의 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사람이다. 그가 은퇴 이후를 고민하며 소일거리로 찾은 것이 예술이었다.

몸이 약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육체적 부담은 덜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예술밖엔 없더라고 그는 술회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80을 바라보는 그의 ‘젊은 정신’과 태도에 감탄하게 된다. 까사돌은 그가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영화 등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낡아가는 도시와 함께 세월을 통과해 온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를 꾸려가는 모습은 늙음에 대해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창의적 노년과 예술이라고 하면,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떠오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꼽히는 그는 한 기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카잘스 선생님,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95세 나이임에도 여전히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간단하면서도 묵직한 답변. “왜냐하면 내 연주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노동과 육체노동을 구분하지 않았던 그다운 대답이다. 그는 스스로 육체노동자임을 자처한다.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그가 94세의 나이에 유엔 총회에서 공연하며 했다는 말도 인구에 회자된다. 카탈로니아 민요를 첼로에 맞춰 편곡한 ‘새의 노래’를 연주하며, “카탈로니아 새들은 ‘피스(Peace), 피스(Peace)’하고 웁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시즘 독재에 항거해 고향을 떠나 한동안 연주 활동마저 중단할 만큼 불의에 맞서는 자유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어떤 지평은 노년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울림을 남긴다. 예술가 이전에 육체의 가능성과 몸을 사용하는 노동을 존중하는 사람, 정치적 불의를 회피하지 않는 시민, 거장이라는 칭호에 안주하지 않는 깨어있는 정신. 예술이 그렇듯, 늙음도 결국 하나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http://news.kawf.kr/?subPage=02&searchCate=05#

반응형

'예술가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망가자  (0) 2020.10.14
천재들의 명곡들  (0) 2020.07.12
A dream you dream..  (0) 2018.07.22
Pale Blue Dot :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 사진`  (0) 2018.07.2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0) 2018.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