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시필사. 206일 차]
읽어줘요, 제발 - 김상미
마르크스가 죽은 해 카프카는 태어났지만
카프카가 죽은 해 나는 태어나지 못했어요
입 밖에 내지 못할 어둠 속에 그냥 누워서
입 속에서 죽어버린 내 사랑만 탓하고 있었어요
마음 던질 시간도 없이
마음 모을 시간도 없이
날마다 마음에다 벼랑만 쌓았어요
노란 튤립처럼 머리를 꼭 닫고 있었어요
서로 뒤얽힌 운명처럼 뒤얽힌 머리로 뭘 하겠어요?
생에 침을 뱉고 그 속에 꼭꼭 숨어서
금방 구워낸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두 눈 속에 빠뜨린 태양만 쪼아대고 있었어요
아무리 나를 아끼려고 해도
무수히 발길질 해대는 내 자궁 안의
불온한 버릇
― 계속해서 읽어줘요, 제발
타버린 그대 마음 속 지독한 탄내 같은 시집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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