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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기록/미학. 철학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까지: 미학 성립의 철학적 배경

by 박지은(MyMars) 2025. 9. 29.

 

근대철학의 시작: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

근대철학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데카르트는 목적론적 세계관에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목적론적 세계관 vs 기계론적 세계관

목적론적 세계관은 세계의 현상들이 특정한 목적에 의해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페스트는 하나님이 유럽인들을 벌하기 위한 결과다"라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는 객관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인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반면 기계론적 세계관은 세계의 현상들이 물리 법칙과 인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페스트는 쥐의 바이러스를 벼룩이 인간에게 옮기면서, 도시화에 따른 인구 밀집화와 동방과의 무역 활성화로 인해 발생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객관적인 원인과 결과를 통해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데카르트, 『방법서설』)은 객관성과 확실성의 근거를 제시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석판명한 인식

데카르트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의 존재만큼 확실성을 갖춘 현상, 즉 '명석하고 판명한(clare et distincte)' 현상만이 정당한 인식과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명석(clear): 무엇인가를 보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예를 들어 "이것은 스마트폰이다"라고 즉시 알 수 있는 것.
  • 판명(distinct): 그 대상의 모든 면면을 속속들이 개념적이고 논리적으로 열거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이 스마트폰의 스펙은 이러저러하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

결국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한계

데카르트의 입장은 현상에 관한 인식이 현상 그 자체의 질적인 면모와 무관하게, 오직 우리의 지성에 따라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해바라기를 들고 있다고 하자. 생물 분류 방법상으로는 모두 해바라기이지만, 각자의 해바라기가 가진 질적인 면모는 모두 다르다. 데카르트식의 개념적 설명은 실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감성과 감정의 영역이다. 우정, 사랑과 같은 것들은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데카르트적 학문의 흐름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결국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대철학은 세계를 지성의 세계감성의 세계로 구분한 뒤, 오직 지성의 세계만을 정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감성의 세계는 부수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라이프니츠: 미학을 위한 마중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에 이르러 근대철학에서 발견되는 지성 편중의 경향이 어느 정도 완화된다.

지성과 감성의 연속성

데카르트가 세계를 지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로 분명하게 구분했다면, 라이프니츠는 이 두 세계를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지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붙어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연속성은 지성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따라서 감성의 세계는 여전히 지성의 세계에 비해 부수적이고 우연적인 사안으로 남는다.

감성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성으로 이해된 것만이 제대로 이해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식의 단계 구분

그럼에도 라이프니츠는 인식에서 감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에게 인식은 오직 명석하고 판명한 것이었고, 감성은 인식에서 아무런 소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인식의 단계를 구분하며 인식에서 감성의 자리를 마련한다.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인식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인식은 애매하거나(obscurus) 명석하다. 명석한 인식은 다시 모호하거나 판명하다. 판명한 인식은 비충전적이거나 충전적(adaequata)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충전적인 인식은 상징적이거나 직관적이다. 가장 완전한 인식은 충전적이면서 동시에 직관적인 인식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Je ne sais quoi)'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애매한 인식과 명석하지만 모호한 인식을 인식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Je ne sais quoi)'에 관한 인식의 가능성이 긍정된다.

'Je ne sais quoi(주네세콰)'는 프랑스어로 "나는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며, 형언하기 어려운 특별한 매력이나 특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매력적이고 독특하게 만드는 특별한 질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정은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좋고 매력적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상태,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의 영역이다.

미학 탄생의 발판

이와 같은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은 정확히 감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현상에 해당한다. 라이프니츠는 애매한 인식과 명석하지만 모호한 인식에 확고한 자립성과 고유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와 같은 인식은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에 이르기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단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에 비하면 감성에 훨씬 많은 것을 부여했다.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것을 이야기하며 감성 그 자체에 주목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미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기 위한 터를 깔아준 셈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지성과 감성이 두루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날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불과 200~30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데카르트로부터 라이프니츠로 이어지는 철학적 흐름은 감성의 영역을 학문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었고, 이것이 바로 미학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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