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이사 예찬'이란 제목으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실제 책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인연'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글을 쓰고 진짜로 서울을 벗어나(그러나 은평구에서 10분 거리) 고양시 원흥에 있는 전망 좋은 지식산업센터로 작업실을 옮겼었다.
꽤 괜찮은 곳이었지만 밤에는 에어컨을 못 트는 중앙냉방시스템 때문에 1년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개별 냉방과 실내 화장실을 갖추고 역시 전망 좋은 장충동 지금 건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년이 후딱 지나서 또 작업실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이사와 짐 정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하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눈도 흐릿하고, 무거운 것도 더이상 척척 들 수가 없다 ㅜㅜ
다음에는 다른 어떤 조건보다도 다정한 이웃이 있는 곳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이제는 살아보고 싶은 곳들을 웬만큼 경험해 본 듯하여, 그동안 지냈던 곳들 중에서 좋았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역시 나이 들면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 걸까? ㅎㅎ
음악을 계속하는 이상 작업실은 평생 필요할 텐데, 온전한 정착을 위해선 땅이나 건물을 사는 수밖에 없다는... 죽기 전에 과연 가능할는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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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또 이사를 했다.
이사란 참 귀찮고 힘든 일이다. 시간과 돈도 많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내 힘으로 길을 찾아가며 살겠다고 25살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이후, 숱하게 이사를 다니며 살아왔다. 집이 없으면 통상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니, 임대 계약 만료 시점이 오면 다음에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야 하나 생각할 법도 한데,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부동산 공화국에 살면서 실거주 목적이든 투기 목적이든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는 건 참으로 특이한 일일 것이다. 굳이 이유를 붙여보자면 내게는 부동산보다 의미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고, 이사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살까?'를 고민하는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주거 형태도 아파트부터 단독 주택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살아보고 싶은 곳도 너무 많다. 물론 내가 직장이나 육아 등의 지리적 제한 조건이 없는 뮤지션이자 싱글이라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살고 싶은 곳이 생기면 언제든 홀가분하게 옮겨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주거 환경은 삶의 질에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주위에 어떤 이웃이 사는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시설과 맛집이 많은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가까운지,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강이나 산이 근처에 있는지, 운동하기 좋은 공원이나 산책로가 있는지, 치안이 좋아서 밤길 걱정이 없는지, 교통은 편리한지, 소음이나 예상치 못한 불편은 없는지 등등 그 동네에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많은 것들이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줄곧 서울 안에서 원하는 동네로 이사를 다녔지만, 다음에는 서울에서 멀리 벗어나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작업실을 얻으려고 한다. 팬데믹을 겪으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주거 환경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재택근무나 원격회의가 늘고 실제로 이동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답답한 도심보다 자연과 가까운 외곽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실리콘 밸리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이 미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떨어졌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 군데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집을 가꾸고 익숙한 동네에서 단골손님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음식점에 가면 먹어본 것보다 안 먹어본 것을 주문하는 성격이라 힘닿는 데까지 새로운 동네에 살아보는 모험을 계속 즐기고 싶다.
이사를 하게 되면 억지로 짐 정리와 대청소도 하게 된다.
이사는 '이삿짐'이라는 큰 과제를 안겨준다. 처음에 이사를 할 때에는 갖고 있는 것을 모조리 잘 옮기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사를 다니다 보니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다들 이삿짐을 싸며 혹은 이삿짐을 풀며, 추억에 잠기는 시간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먼지를 털고 오래된 박스를 열면 잊었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게 몇 박스 정도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돌아가 그 물건들과 함께 울고 웃던 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몇십 박스라면 고된 중노동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이삿짐을 쌀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외에 대부분의 짐은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이다. 그 시간들이 실제 했었다는 증거로 남겨진 물건들이니 그 또한 선별해서 보관했을 것이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것 하나도 버리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큰 결심을 해야만 한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몇 번을 버렸다 다시 가져오길 반복한다. 하지만 나이가 먹는 만큼 과거도 물건도 늘어나니 무한정 보관할 수는 없다.
이사를 하면 많은 이별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정들었던 동네와, 그만큼 늘어난 추억들과, 버려야 할 짐에 실린 기억들까지. 물론, 적지 않은 돈과 시간과 체력도.
그럼에도 내가 이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리와 대청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집과 나의 물건들과 그에 깃든 추억과 마음까지 모두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하고 해야만 아니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이사는, 그래서 얄밉지만 고마울 때가 있다.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산더미처럼 쌓인 짐들도 언젠가는 다 정리가 될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도 결국은 끝이 나고, 모든 이별 다음에는 또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이사와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마음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인연을 기대해 본다.
p.s.
검색하다가 발견한 리뷰! 줄까지 쳐가며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진심 감동받았다.
열심히 작업해야지! 블로그 그만하고 어서 로직을 열라고!! (무뜬금 기승전작업)
https://blog.naver.com/ninakim_1004/22263466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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