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MyMars) 2021. 5. 24. 23:41

인간은 사물과 현상을 지각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자신의 생각으로 왜곡해서 보는 데도 뛰어나다. 나무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 나무를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나무가 내가 보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마음의 해석, 나의 지식, 나무와 관련된 과거의 경험을 내려놓지 않으면 나무의 실체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 없이 다가갈 때 나무는 비로소 본래의 아름다움과 위엄과 신성함을 드러낸다. 한 그루의 나무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

"바히야여, 그렇다면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어떤 것을 바라볼 때 다만 바라보라. 어떤 것을 들을 때 다만 들으라. 어떤 것을 감각할 때는 다만 감각하고, 인식할 때는 다만 인식하라. 그것들에 '나의 마음'을 개입시키지 않을 때 그대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고, 자유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볼 때는 거기 오직 봄만이 있어야 한다. 들을 때는 거기 오직 들음만이 있어야 한다. 감각할 때는 오직 감각만이 있어야 하고, 인식할 때는 오직 인식함만이 있어야 한다."

'나'의 해석과 판단을 개입시키지 말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고 듣고 감각하고 인식하라는 것이다. 보는 나는 사라지고 단지 바라봄만이 있을 때 우리는 외부의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품고 있던 바히야는 이 몇 문장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길가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몇 분만에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

바히야는 붓다의 제자도 아니고 승려도 아니었으며 계율을 지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가르침을 얻고 깨달음을 얻은 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그가 전생에 많은 수행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알프레드 아들러도 말했듯이, 사람에게 있어 진정한 변화는 백 번 각오하고 다짐하는 것보다 한 번 제대로 깨달을 때 찾아온다.

'단지 바라봄만이 있을 뿐, 보는 나는 없다. 단지 들을 뿐, 듣는 나는 없다.'

붓다가 어부 바히야에게 준 이 아름다운 가르침은 오늘날 명상 수행에서 자주 인용된다. 듣고 보는 것에 ‘나'라는 해석자가 개입할 때 왜곡이 시작되고 허구의 세계가 창조된다. 그 해석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믿는다. 그때 우리는 한 그루 나무, 한 송이 꽃, 한 사람의 인간에게서 멀어진다.

*전문 :

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photos/a.505327042905720/1952321241539619/?typ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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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이 분다.

따뜻함은 넘었지만 뜨겁기 전 5월의 햇살이 창밖으로 쏟아지고,

바흐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이 아름다운 순간 덩그러니 걸려있는 청난방을 보고있자니

왜 눈물이 날까?

물론, 나의 눈물은 이별 때문이리라.

이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 때문이리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아침에 또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아침에 일어나 폰의 알람을 끄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카톡 확인, 그리고 페북 등 SNS 둘러보기다.

아마도 나는 '과거의 오늘' 때문에 페북을 끊지는 못할 것 같다.

벌써 12년 차이니 매일 뜨는 과거의 오늘이 무척 재미있다.

2년 전 오늘의 글을 보고 무척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그때도 아마 깊이 느꼈겠지 그러니까 공유해왔겠지.

그러나 실천하지 못했다.

한 번 제대로 깨달을 때, 그 날이 오늘이기를 바란다.

절대 잊지 말아야지.

https://youtu.be/h3-rNMhIyuQ

Víkingur Ólafsson – Bach: Organ Sonata No. 4, BWV 528: II. Andante [Adagio] (Transcr. Stra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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