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MyMars) 2021. 1. 22. 22:15

[2021 시필사. 19일 차]

저, 그늘 - 허형만

 

사랑이여

저, 그늘 같은 사랑이여

나의 마음이 저만큼 비어

저만큼 넉넉했음 좋겠다

 

허공이

오체투지로 삼천 배를 바쳐서

마침내 공양하듯 이뤄낸

저, 그늘

 

슬퍼서 더는 슬퍼할 수 없는 목숨들

기어서도 더는 기어갈 수 없는 목숨들

벗고도 더는 벗을 수 없는 목숨들

주려서 더는 주릴 힘도 없는 목숨들

 

무량, 무량으로 쌓이는

저, 그늘

고봉으로 들이켰음 좋겠다

사랑이여, 저 그늘 같은 서늘한 사랑이여

 

나의 마음이 저만큼 비어

저만큼 넉넉하지 않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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