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필사 & 시낭독/2020 매일 시필사

아무한테도 아무한테도 - 이병률

박지은(MyMars) 2020. 9. 2. 23:38

[2020 시필사. 80일 차]

아무한테도 아무한테도 - 이병률      

 

1     

 

그 땅에는 뽑아내고 뽑아내도 자꾸만

그 나무가 자란다고 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땅에

유독 그 자리에 그 나무만 자라난다고 했다 


 2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소릴 들었다      

 

사랑한다면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

사랑한다는 감정의 판지를 덮고도 이토록 추운 것은

혓바닥으로 죽은 강물을 들이켜

한꺼번에 휘파람 불 수 없다는 증거   

  

한 덩어리의 바람이 지나고 

한 시대를 에워 가릴 것처럼 닥치는 눈발까지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소리로만 들렸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말만 거셌다     

 

돌에서 물이 흐르고 

그 물이 굳어 돌이 되고      

 

그 돌에 틈바구니 생기도록 

사무치고 사무쳐도      

 

나 또한 

아무한테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자는 소리만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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