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기록/문학. 책

시인의 죽음 (다이허우잉 지음, 임우경 옮김)

박지은(MyMars) 2025. 6. 13. 18:08

을유세계문학전집 6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완독 모임 #6]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을 순서대로 매달 한 권씩 함께 읽어나가는 1x 년 프로젝트, 6번째 모임.

지난달에는 문화 대혁명을 관통한 지식인들의 역사적 자화상,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이허우잉의 데뷔작 '시인의 죽음'을 읽었다.

다이허우잉의 휴머니즘 3부작 중 하나로, 1960년대 중국 문화 대혁명의 한복판에서 직접 보고 겪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문화 대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그 혼란 속에서 정치적 권모술수에 휘말려 희생되어 가는 순진하고 고지식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뉴스만 봐도 속이 터지는 국내외 정치 상황까지 겹쳐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총 84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ㅠㅠ
게다가 e-book도 없었다.
두꺼운 책을 매일 밤 두세 시간씩 들춰야 했고, 꼬박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독서 모임에는 다 읽고 가자’는 의지 하나로 끝까지 읽어냈다.

솔직히 말하면, 모임이 아니었으면 분명 중간에 덮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런 스타일의 책을 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5월의 독서 모임은, 모임 날인 첫째 주 일요일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이라 깜짝 이벤트로 전주에서 열렸다.
책 이야기, 영화제의 분위기, 그리고 고즈넉한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져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비록 일정이 빠듯해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으로 충분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도 있다.
연휴에는 자차로 어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밤 12시가 넘도록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던 경험은 꽤나 강렬했다.

아마도 전주는 문학, 사람, 영화, 그리고 뜻밖의 고생까지 모두가 한데 섞여 기억 속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 <시인의 죽음> (다이허우잉 지음, 임우경 옮김) 중에서

 

p.60

정신적 박탈이야말로 가장 잔혹한 박탈이다.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대상을 잃은 데서 오는 절망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 법이다.

 

p.67

한동안 아버지를 주시하던 그가 갑자기 "당신은 나를 속였어!"라고 이리처럼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허리띠로 후려쳤다. 피가,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에 어린 분노와 슬픔이라니! 우웨이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의 붉은 피가 바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입 속으로, 심장 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눈을 떼고 수색지들을 보며 기괴한 표정으로 웃었다. 누군가 그를 항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p.68

"씨발! 퉤!" 그는 두 사람의 붉은 피를 눈에서 짜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힘껏 눈을 깜빡거렸다.

 

p.92

"누구나 다 자기 한계가 있는 법이야. 열다섯에는 열다섯의 한계가 있고, 오십에는 오십의 한계가 있어. 조급해할 것 없어, 유윈. 우린 모두 변할 테니까."

 

p.159

'본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어찌 먼지가 앉을쏘냐?'

 

p.271

'기념'이 될 만한 것은 뭐든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은 기념품이 없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마음속에 새겨지는 법이다.

 

p.273

겨우 인생의 반을 걸어왔을 뿐이다. 벌써부터 고통스런 기억 속에 산다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은가? 인생의 길목에 모래와 암초가 있다면 사람의 마음도 길게 흐르는 강물처럼 모래와 자갈의 마찰에도 견뎌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다시 시작해 새로운 삶을 창조 할 수 있겠지? 아직 늦지는 않았어. 그래, 새로 시작하는 거야!"

 

p.303

도연명은 "마음이 멀던 땅도 저절로 기운다"라고 했던가! 작은 탁자 앞에 앉은 샹난은 만년필을 들고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끼적였다. 머릿속은 텅 빈 상태였다. 자기가 뭘 끼적거리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종이 한 장이 가득 차서야 들여다보니 온통 조조의 시구절이었다.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이나 돌아도,

내려앉을 가지가 없네.

 

p.334

"쯔치, 쓰위안이 우리 화가들은 한 푼 값어치도 없는 사람들처럼 말하네. 우리 팔레트가 단순하다나. 그럼 당 신네 시인들은 팔레트 없이도 각양각색의 마음을 모두 그려 낼수 있단 얘긴가?"
위쯔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필레트를 쓰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단지 우리 팔레트는 손에 드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지. 우리는 삶 속의 온갖 색을 눈으로 흡수하고 영혼 속에서 갈고 닦아 다시 그려 내는 거야. 하지만 인생에 비교하면 우리 팔레트도 단순하긴 마찬가지야. 인생이란 눈으로만 볼 수도 없고 또 한쪽 각도에서만 볼 수도 없는 거니까. 시인이든 화가든, 예술가들은 다 가슴을 활짝 열고 깊이 느끼고 호흡해야 해. 많이 흡수할수록 좋지."

 

p.401

사람들은 젊은 사람을 관찰할 때 맨 먼저 대자연이 그에게 어떤 것을 선물했는지부터 살펴보지. 왜냐하면 삶이 그의 얼굴에 남긴 흔적이 아직은 많지 않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중년이라면 사람들은 타고난 용모보다는 그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보고 싶어 하지. 사람들은 삶이 그에게 어떤 걸 남겨 주었나, 삶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나, 그런 걸 보고 싶어 하잖니. 나 역시 그렇게 위쯔치를 관찰했어. 젊었을 때 그는 준수했을 수도 있고 그냥 평범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지금 그의 얼굴에서 보는 건 피와 살이 충만한 성격과 약동하는 영혼이야.

 

p.422

"며칠 동안 자네가 안절부절 마음이 편치 않은것 같이서 나도 맘을 놓을 수가 없네! 반드시 신중하게 생각해 서 처리하게. 지금은 진실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모조리 죄가 되는 판국이니까."
위쯔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쓰위안, 난 말이야, 사람에게 충만한 열정이 없다면 사람으로 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

 

p.452

"샤오샹,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생각이 많아질수록 결심하기는 더 힘들어져. 어차피 뒤에서도 남 얘기하고 앞에서도 남 얘기 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야. 남들 말만 듣다가는 지기 삶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샤오상, 기억나지? 우리 대학 때 말이야, 미래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꿨니? 언젠가 추석 때 몇몇 여자 친구들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연작시 놀이를 했잖아.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네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이징, 사람들은 늙는 게 무섭다는데, 난 어째 하나도 무섭지 않은 거니? 난 한순간에 한평생을 다 살아 버렸으 면 좋겠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아름다운 그림일 텐데 하루라도 빨리 그것들을 보고 싶어!'

 

p.466

그녀는 위쓰치의 팔짱을 끼고 달빛을 밟으며 숙소까지 걸어왔다. 그가 떠날 때 샹난은 "오직 오래오래 살면서, 천 리 길 멀리나마 달구경 함께할 수 있기를"이라고 말했다.
달빛이 은은하게 그들을 비추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잠들지 못하고 행복한 기억에 잠겼다. 방금 전의 일이건만 소중하게 추억하면서.....

 

p.504

그녀는 평원평이 고통스러워하며 손가락을 비트는 것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도 고통스러웠다는 거 알아 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고통이라고 해서 모두 동정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아버지는 고서에 나오는 이런 말도 가르쳐 주셨어요. '한 사람이 동쪽으로 가자 다른 사람도 그를 따라 동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간 것은 같지만 동쪽으로 간 이유는 다르다. 고로 옛말에 이르기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깊이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말도 아마 '한비자'에 나올 거예요.

 

p.567~568

"시인 동지, 시를 써 보세요! 아, 바다여......" 그러면서 자기가 먼저 웃음을터 뜨렸다.
위쯔치도 따라 웃으며 그녀의 코를 눌렀다. "요런 꼬맹이 같으니l! 시인을 전혀 존중할 줄 모르는군, 우리 시인들이 만날 '아!' 밖에 모르는 줄 아나?"

샹난이 헤헤 웃었다. "적어도 제가 본 바다에 관한 시에는 대부분 그런 구절이 들어 있었거든요. 저처럼 바다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불민족스럽지만 바다도 아마 기분 나쁠걸요? 생각해 봐요, 누군가 열정적으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다는 숨죽 고 귀 기울일 거예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은 크게 뜨고 말이죠. 시인이여! 당신은 나의 얼굴을 어떻게 묘사할 거지? 나의 성격은? 나의 가슴은?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고작 들을 수 있는 건 텅 빈 미사여구뿐이니 바다가 어찌 실망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바다는 이렇게 누워서 고요하게, 슬그머니 시인의 옆으로 흘러가 버리는 거죠......"
샹난은 평소 지금처럼 시론 비슷한 견해를 종종 늘어놓았는데 위쯔치는 그게 이주 재미났다. 그래서 그도 샹난의 해석을 그대로 이어 말했다. "인정하지. 우리 시인들의 바다 묘사가 그리 이상적이지 못하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꼬맹이! 당신이 바다의 마음을 정말로 이해한다는 건 무엇으로 보장하지? 당신이 바다를 위해 불평하는 것을 들으며 바다는 어쩌면 이렇게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대는 내가 침묵하며 시인들의 묘사와 예찬만 기다린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그 시인들을 길러 낸 건 바로 나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몸에서튕겨 나간 물 한 방울에 불과하지. 그대가 만약 정말로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시인들의 붓끝만 쳐다보지 말고 어서 직접 내 품에 안겨 보라!"

샹난이 웃으며 소리를 높었다. "좋아요! 그럼 한번 가 볼까요?" 그녀는 뛰어가 바닷물 속에 발을 집어넣고 천천히 안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 가던 그녀가 소리를 쳤다. "어머나! 여기에 물고기가 이주 많이요!" "여기저기 발 쳐 놓은 거 안 보이오? 그건 누가 일부러 막아 놓은 거니까 훔치면 안 돼!" 위쯔치가 미소를 지었다. "전 바닷고기는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건 줄 알았죠! 여기 바닷물이 좀 흐려서 그렇지 물만 맑으면 집는 게 다 물고기겠어요."

"물이 너무 맑아도 물고기가 없다지 않소. 여기 물이 왜 이렇게 흐린지 아오?"
샹난이 고개를 저었다.
"물이 너무 얕아서 그런 거요. 깊은 바닷물은 이것과는 다른 빛깔이지. 그게 바로 시인들이 '푸른 물결 넘실대고 바닥까지 맑디 맑은'이라고 노래하는 바다요."
"그게 그러니까, 병에 가득 찬 물은 흔들리지 않아도 반만 찬 물은 흔들린다는 거네요.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흐려질 거 아니에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소. 만약 삶을 바다에 비한다면 어떻겠소?"
"삶의 바닥까지 내려가면 갈수록 생각도 더욱 맑아진다. 그런가요?"
"그렇소. 삶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은 것 같소. 일도 많고 사람도 많고. 멀리서 보면 확실히 보이는 듯한데 가까이에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잘 안보이지."

 

p.612

오늘처럼 이렇게 법률이 인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감했던 때는 없었던 것 같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법률의 중요성을 모를 거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는 위협하면서도 자기들의 권리는 위협받을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너나 나 같은 서민들은 법률의 보호가 꼭 필요해.

 

p.636

"쯔치! 난 왠지 상황이 돌변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 침착, 침착, 또 침착해야 하네! 되도록이면 말을 아끼게. 변명하고 따져 봐야 일만 더 망칠 거야. 옛날 유하동이 이런 말을 했지. '오늘에는 옛 사람들이 지녔던 진실함은 사라지고 그 수치스러운 것만 남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결백함을 알이주기를 바라나 그렇게 되질 않는구나. 직불의는 동료에게 금을 사서 배상하고 유관은 마차에서 내려 고향 사람에게 소를 돌려주어야 했다. 이를 통해 보건대 참으로 의심이란 변명하기 어려우며 말로는 당해낼 수 없는 것을 알겠다.' 그 옛날 직불의나 유관이 금 도둑, 소 도둑으로 몰렸던 것은 그래도 작은 일일 뿐이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은 그들보다 백 배는 더 복잡하니, 그야말로 말로는 그 의심을 풀기 어렵지 않겠나. 오직 불변하는 것으로 만변하는 것에 대응하고, 조용히 관찰하고 조용히 사색하고 조용히 기다려야 하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굳게 믿게.

 

p.639

쟈셴주의 말이 희망과 간절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위쯔치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쟈셴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라오쟈! 동무의 그 호의, 정말 고맙소! 나도 동무처럼 춘쑨의 운명, 동무의 운명, 나의 운명, 그리고 우리 당과 국가의 운명이 모두 좋기를 바라오! 아마 모두 좋아지겠지요! 그러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위쯔치의 이 말에 쟈셴주는 눈물을 흘렸다."라오위! 과거에 난 국가 대사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런 건 정치가나 당이나 당원의 일이라고만 여겼으니까. 근데 이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요. 내 운명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나와 동무 같은 당원들이 운명을 함께한다는 걸 알게 된 거요! 인생이 그걸 가르쳐 주더군요!"

 

p.664

"'희망'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은 미래와 통하는 거니까!"
'크면 큰 대로 나쁜 점이 있고 작으면 작은 대로 좋은 점이 있는 법'이었다.

 

p.689

그녀는 30여 년을 살았지만 인생의 행복과 고통의 맛을 진짜 알게 된 것은 모두 지난 석 달 남짓한 동안이었다. 시간의 신은 인생의 온갖 맛을 한잔 술에 녹여 그녀에게 바친 것이다.

 

p.740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 마음속의 물결은 더욱 커지고 더욱 깊어만 갔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어. 인생이란 바둑판처럼 한 수를 잘못 두면 전체 판이 다 영향을 받게 돼. 아무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그저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궁리하는 수밖에......'

 

p.806

그래도 아름다운 것이고, 사람들은 그래도 사랑스러운 거예요."

마다하이가 그 말을 받았다. "인생은 당연히 아름다운 거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은 마치 큰 바다 속의 물고기들 같소. 다 죽일 수도 없고 다 잡아들일 수도 없을 만큼 많지. 그런데 일단 억압이 가해지면 바다 밑으로 깊이 숨어 버려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거든. 하지만 우리 눈에는 틀림없이 보일 거요. 왜냐하면 우린 바다 밑에서 같이 헤엄치고 있으니까!"

 

p.808

로맹 롤랑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다 사랑하는 사람을 묻은 무덤이 있다"고. 그녀야말로 마음속에 그런 무덤을 짓고 싶었다.

 

p.812~813

내가 상상했던 삶은 고요한 해변 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잔물결을 일으키고 물장난을 치는 그런 거였어. 무서운 풍랑이 몰아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해일이 밀어닥칠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던 거지. 그저 힘들이지 않고 진잔한 파도를 타고 파란 하늘의 흰구름이나 감상하면서 낭만이나 즐기려고 했지. 깊은 비다 속에 들어가 탐구해 볼 생각은 전혀 해 보지도 않았고. 쯔치 말이 딱 맞아. 뜰 줄만 알고 가라앉을 줄 모르는 사람은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할 수 없다고 그랬거든. 그때 난 확실히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던 거야. 그런데 삶이 와서 나를 야단치기 시작한 거야!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서 나를 바다 밑으로 빠뜨리자 난 너무 놀리서 눈도 못 뜨고 손도 꼼짝하지 못했지. 바다 밑에는 온통 날카로운 암초와 진절머리 니는 모래뿐인 것 같아서 차라리 바닷물이나 몽땅 삼키고 영원히 침몰해 버리는 게 닛다고 생각했어. 원디, 정말이지 몇 번이나 쯔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몰라. 정말 그이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가고 싶었지. 그런데 고맙게도 동지들이 내 손을 뜨겁게 잡아 주더라. 난 몸부림치며 바다 밑을 헤엄쳤어. 그러면서 바다 밑에서 헤엄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또 온갖 사람들이 다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됐어. 그중엔 고생도 많이 하고 공이 큰 사람도 있고 재주와 학식 있는 선비도 있었어. 그래서 나도 맘을 단단히 먹고 그들의 대오에 가담했지. 헤엄치고 물살을 가르며 또 헤엄치고 물살을 가르며, 물도 많이 들이켰고 상처도 많이 입었어.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바다 밑에는 암초와 모래만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산호와 진귀한 조개도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야! 그렇게 난 더는 원망하거나 상심하지 않게 됐어. 숨이 탁 트일 뿐 아니라 이젠 뜨고 가라앉는 것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윈디, 정말 대단한 수확 아니니? 물질적으로야 난 여전히 빈털터리지만 정신적으로는 절대 가난하지 않아. 아마 갑부는 아니라도 중간 정도는 될 거야. 내가 살아온 모든 경력이 바로 내 재산이야, 평탄치는 않았지만 의미 있었던 내 인생 경력 말이야."

 

p.815

"퇴보기도 하고 전진이기도 해, 그렇지? 나나 즈융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맞아. 이게 바로 역사의 변증법이지. 늘 원래 자기 자리에만 있는 사람은 자기와 주변에 대해서 오히려 제대로 보기가 힘든 법이 거든. 몇 걸음 물러나 보기도 하고 테두리 밖으로 나가 보기도 해야 더 확실히 볼 수 있어. 문화 대혁명 덕분에 우리도 우리나라와 민족에 대해서, 나와 남에 대해서 더 확실히 볼 수 있게 됐잖아! 10년 동안 모두 다 고생했지. 그것이 적든 많든. 가볍든 무겁든. 그 고통이 우리를 일깨웠어. 거인이 다시 한 번 깨어난 거야! 거인의 머리는 다시 사색하기 시작했고 성큼성큼 전진하기 시작했다고!"

 

2025. 5. 4.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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