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기록/미학. 철학

정동(Affect)이란?

박지은(MyMars) 2025. 4. 30. 23:32

이번 달 미학 스터디에서는 음악사회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헤즈먼드챌시(David Hesmondhalgh)의 저서 『음악은 왜 중요할까?(Why Music Matters)』를 읽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미학 스터디에서 다뤄온 미학 이론들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이번 책을 통해 '정동(Affect)'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정동'은 서양 철학의 'affect' 개념을 번역한 용어로, 라틴어 'afficere(영향을 주다, 작용하다)'에서 유래했다. 현대 철학에서는 특히 '언어화되기 전의 감각적 반응'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정동은 단순한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상태이며,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문화적 맥락 안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feeling), 정서(emotion), 기분(mood) 보다 더 원초적인 잠재적 경험으로 보기도 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정동을 "신체의 행동 능력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신체의 변용"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정동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역량(potentia)과 직결된 문제였다. 

"정동은 존재의 힘의 변화다"라는 그의 명제는 현대 정동 이론(Affect Theory)의 출발점이 됐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발전시켜 "신체가 다른 신체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능력"으로 재해석했다. 

이들에게 정동은 언어나 의미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신체들 간의 직접적 관계를 가리킨다.

 

브라이언 마수미는 감정(emotion)과 정동을 구분한다. 

감정은 개인적이고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경험인 반면, 정동은 그 이전의 전개인적(pre-individual) 단계에서 발생하는 강도(intensity)의 경험이다. 

감정은 “나는 슬프다”처럼 명명될 수 있지만, 정동은 명명되기 이전의 진동, 떨림, 흐름으로 존재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정동이 의식적 인식 이전에 신체에서 먼저 발생하는 생리적 변화라고 말한다.

 

 

음악은 가사나 메시지를 해석하기 이전에, 리듬과 음향, 진동을 통해 몸에 먼저 반응을 일으킨다. 

전통적인 음악학이 화성 구조나 형식적 분석에 집중했다면, 정동 이론은 음악이 신체에 불러일으키는 물질적 효과, 즉 소름이 돋는 순간, 전율, 떨림, 흥분 같은 생리적 반응에 주목한다. 

이는 스테레오와 앰프 같은 현대 음향 기술의 발전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1960년대 록 음악을 예로 들면, 그 시대의 청년들이 록 음악에 열광했던 이유는 가사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전례 없는 강도의 음향적 충격과 정동적 에너지 때문이었다.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 드럼과 베이스의 박동은 단순한 음악적 요소가 아니라, 신체에 직접 작용하는 정동의 힘이었다. 

음악은 메시지를 해석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각의 사건이다.

 

헤즈먼드챌시는 『음악은 왜 중요할까?』에서 이러한 음악의 본질을 정동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며, 특히 ‘정동적 전환(affective turn)’에 주목한다.

정동적 전환은 1990년대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일어난 패러다임의 변화로, 언어와 담론 중심의 분석에서 벗어나 신체적 경험과 물질성을 중시하는 흐름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은 음악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데, 음악이 바로 언어 이전의 신체적 경험을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예술 형식이기 때문이다. 

헤즈먼드챌시는 이 정동적 전환을 통해, 음악이 단지 문화적 텍스트나 사회적 코드의 전달체가 아니라, 신체와 감각, 생물학적 리듬에 직접 작용하는 물질적 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악은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감각의 존재이다. 감각, 지각, 정동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이며,
그것들은 경험된 어떤 것을 넘어서서 유효하다.
예술 작품은 감각의 존재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정동 이론은 단순한 학문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예술과 문화를 경험하는 방식과 감각의 차원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게 만든다. 

음악을 의미의 전달체가 아닌 정동의 생산자로 이해하는 순간, 감상과 비평의 언어도 달라진다.

정동 이론은 우리에게 음악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AI 시대에 인간이 직접 행하는 음악과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좋은 음악은 왜 좋은가? 

생각보다 먼저, 몸이 그 ‘좋음’에 반응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안다.

 

음악은 언어와 이성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몸과 영혼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인간을 인간 이상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앞으로 예술은, 여전히 혹은 더욱더 중요해질 이유일 것이다.

 

2025. 4. 27.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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